휴일을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집에서 느긋하게 쉬기, 친구와 만나서 놀기, 늦잠으로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기.
니레이는 현관 거울 앞에서 실핀으로 넘겨 올린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9월로 넘어가서도 여태 무더운 날씨를 지내기엔 이 스타일이 제일 좋았다. 마저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나서야 니레이는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오늘 니레이가 선택한 휴일을 보내는 방법은 마을 산책이었다. 후우린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그는 시간이 될 때마다 마코치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그건 입학하고 나서도 변함없는 루틴 중 하나였다.
“아! 사토 할머니 안녕하세요~”
“니레구나. 오늘도 기운 넘쳐서 보기 좋네.”
처음에는 단순히 정보 탐색이 주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을을 돌아보며 여러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온정을 느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런 사소한 따스함이 쭉 이어지면 좋겠다고,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중학생 끄트머리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마을 순회다. 꼭 순찰이 아니라도 마을을 쭉 돌아보는 건 니레이의 취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안녕하세요~ 카레빵 하나 주세요!”
“오! 마침 금방 구웠는데 운이 좋구만, 형씨~”
사보텐 베이커리 앞을 지나는 김에 최근 사쿠라가 푹 빠진 카레빵을 샀다. 덤으로 받은 단팥빵에 기분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갓 나온 카레빵, 처음 먹어 봐요!」
사진을 찍어 반 친구 중 다섯 명이 모인 단체 메신저에 보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스오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맛있어 보이네~」
남들 앞에서는 좀처럼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는 스오지만, 단톡방에 올라오는 답변은 하루 종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키류 못지않게 빠른 편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첫 번째로 온 스오의 메시지에 니레이는 내심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니레 쨩 사진 잘 찍네~」
「오오! 좋네!」
「그거 맛잇ㅅ어」
연달아 도착하는 메시지와 사쿠라의 오타에 니레이는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식으로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것 역시 후우린에 들어간 이후로 늘어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갓 구워서 따끈따끈한 카레빵을 한입 베어 물며 니레이는 다시 거리를 나아갔다.
오늘은 멀리 돌아가 볼까. 어느 정도 배도 찼으니 운동 겸 평소에는 가지 않는 길을 가보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톤푸 상점가에서 조금 벗어난 골목길로, 니레이는 발길을 향했다.
그의 걸음이 멈춘 건 상가를 빠져나와 옆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 앞이었다. 골목길 입구에는 정갈한 붓글씨로 ‘찻집’이라고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 작은 간판은 가끔 이곳을 지나며 봤지만, 딱히 신경 쓴 적은 없었다. 애초에 여기까지 들어올 일도 없을뿐더러, 니레이는 차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찻집.
특별한 이름 없이 심플한 간판이 오히려 흥미를 이끈 탓일까. 아니면 ‘차’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떠오른 얼굴 때문일까. 니레이는 골목길 안쪽으로 나아갔다.
딱 사람 한 명이 지나다닐 정도의 골목길은 제법 길게 이어져 있었다. 진짜 이 끝으로 가면 찻집이 있는 걸까 싶을 정도로 깊숙한 골목을 쭉 따라 나가자, 그 앞에는 제법 넓게 트인 공간이 나왔다.
“와아……!”
아치형 대문에 걸린 ‘찻집’이라는 간판은 그가 길을 잘 찾아왔다는 듯이 니레이를 환영해 주고 있었다. 얼핏 보면 일반 주택처럼 생긴 건물 마당에는 잘 관리된 푸른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여긴 좀 더 간판을 크게 달아야 하는 거 아니야? 골목 앞에 있던 작은 간판을 보고 이런 비경을 떠올리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 정원을 발견한 것 같아, 니레이는 속으로 조금 두근거렸다.
그는 돌길을 따라 건물 쪽으로 향했다. 찻집이니까 들어가도 되겠지? 따로 영업 표시가 보이지 않아 고민했지만, 기왕 발견한 김에 가게 안쪽도 돌아보고 싶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딸랑, 하는 종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바로 보이는 카운터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니레이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아, 안녕하세요! 지금 여기 찻집 영업 중인 거죠……?”
“그럼요. 자리는 편하게 앉으세요.”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오너의 태도에 니레이는 조금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과연, 이렇게 멋진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역시 상냥하다. 일단 자리부터 정하고 주문하자 싶어서 니레이는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식물을 좋아하는 걸까, 정원처럼 찻집 내부에도 크고 작은 화분들이 많이 장식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내부도 넓은 편이네. 다른 손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서너 개를 지나쳐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니레이는 그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게 제일 안쪽, 창가 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은 니레이가 얼마 전 떠올렸던 얼굴이었다.
“스오 씨?”
너무 놀란 나머지 이름부터 부르고 말았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스오는 니레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역시 니레이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어라. 니레 군이다.”
“스오 씨가 왜 여기에…….”
내뱉고 보니 이상한 질문이었다. 쉬는 날 그가 어디에 있든 자유일 텐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까닭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를 떠올리며 이끌리듯이 찾아온 곳이니까. 좁다면 좁은 마을 안에서 우연히 스오와 마주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니레이는 곧장 비어있는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쉬는 날에 이렇게 마주치니까 신기하네요.”
“그러게. 설마 니레 군을 여기서 만날 줄 몰랐어~”
스오는 차분하게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에 조예가 없는 니레이는 그게 무슨 차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은은하게 풍겨오는 차 내음은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스오 씨는 여기 단골인가요?”
“제법 자주 오려나. 혼자서 조용히 차를 마시기 좋은 곳이거든.”
“아, 혹시 혼자 있고 싶은데 제가 괜히……!”
“괜찮아, 니레 군은.”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스오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니레이는 어쩐지 멋쩍은 기분이 들어 무슨 말이라도 내뱉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화젯거리를 떠올리던 니레이의 시선에 테이블 한쪽에 놓인 메뉴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가게에 들어와 놓고선 아직 주문도 하지 않았다. 니레이는 허둥거리며 메뉴를 집어 들었다.
“호, 혹시 추천 메뉴 같은 게 있나요!”
“추천 메뉴?”
“사실 저는 차에 대해서 잘 몰라서요…….”
하하, 하며 니레이가 느슨한 웃음을 흘리자 스오 역시 눈을 접어 상냥하게 마주 웃었다.
“좋아. 우선 메뉴부터 바로 들어볼까?”
상냥하게 웃어줬다는 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성급한 나머지 거꾸로 메뉴판을 들고 있던 자신이 퍽이나 재미스러웠는지, 스오는 손을 뻗어 니레이가 쥐고 있던 메뉴를 정방향으로 고쳐주었다.
“니레 군은 평소에 무슨 음료 마셔?”
“좋아하는 걸로 따지자면 멜론 소다일까요.”
“그러고 보니 항상 젤리도 달고 다녔지. 니레 군은 달콤한 걸 좋아하는구나.”
메뉴판을 넘기며 스오는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차 전문점이라 그런지 메뉴에는 여러 종류의 차들이 잔뜩 있어서 오히려 고르기 어려워 보였다. 골똘히 생각하는 스오의 표정은 드물어서, 니레이는 저도 모르게 메뉴판이 아닌 그의 얼굴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수국차는 어때?”
순간 고개를 든 스오와 그대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대놓고 쳐다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숨길 겨를도 없이 맞닥뜨린 눈동자에 니레이는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메뉴판 쪽으로 떨궜다.
“수, 수국차! 마셔본 적 없는데 궁금하네요!”
“제법 단맛이 강한 편이라 니레 군 입맛에 맞을 거야.”
급히 시선을 피하는 니레이의 반응이 재미있던 걸까. 스오는 그대로 니레이의 시야에 맞춰 그의 얼굴 앞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열이 날 때도 효능이 있거든.”
바로 눈앞에서 싱긋 웃는 스오의 얼굴에 니레이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때때로 장난기가 발동하는 성격이란 건 알고 있지만, 장난 스위치가 켜진 스오는 제법 성가신 존재였다. 니레이는 메뉴판으로 스오의 얼굴을 꾹 밀어냈다.
“그, 그러면 당장 주문해야겠네요! 카운터 다녀올게요!”
놀라서 붉어진 얼굴을 스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 그는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수국차, 수국차라고 했지……! 마음속으로 주문 내역을 외며 니레이는 서둘러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니레 군 이럴 때는 힘세구나.”
냅다 얼굴에 밀어붙여진 메뉴판 탓에 코가 조금 얼얼했다. 저 멀리 사라진 니레이를 눈으로 좇으며, 스오는 제 손으로 입가를 슬며시 가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자신을 열중해서 바라보던 니레이의 얼굴이었다.
자각도 없이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면 반칙인걸.
의도치 않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상시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뛰는 가슴은, 제멋대로 곡선을 그리는 입가처럼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도 수국차 마시는 게 좋으려나.”
니레이에게 장난스레 읊어준 수국차의 효능을 떠올리며, 스오는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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