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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오니레] 열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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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컨이 고장 난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 에어컨은 결국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부모님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무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쓰던 에어컨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번째로 맞이하는 여름이니 그동안 에어컨도 부지런히 일을 한 셈이었다. 수리 접수는 넣었지만 아무래도 한여름이다 보니 수리 센터 역시 여기저기 출장 나가기 바쁜 모양이었다. 며칠은 있어야 방문이 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에 니레이는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필 고장 난 에어컨이 니레이 방에 있던 에어컨이기 때문이다. 결국 니레이는 오래돼서 베란다에 방치되던 선풍기를 꺼내는 게 최선이었다.


 선풍기를 깨끗하게 닦은 건 좋았지만 문제는 소음이었다. 어디가 문제인지 바람 세기가 강할수록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는 한밤중일수록 더욱 소란스럽게 느껴졌고, 니레이는 결국 약풍을 선택했다. 방안에 창문이 있어서 열어두긴 했지만, 창가와 침대는 조금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시원한 바람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결국 오늘 밤도 무더운 열기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니레이였다.


 얇은 여름 이불을 침대 한편으로 밀어 놓은 채, 니레이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기 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게 안 좋은 습관인 건 알았다. 하지만 꿉꿉한 공기와 후덥지근한 온도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할 일도 마땅히 없으니 괜히 핸드폰 사진첩을 정리하고 있던 것이다. 그는 최근 저장된 사진 순으로 앨범을 둘러보고 있었다. 포토스의 여름 한정 멜론 소다, 톤푸 상점가의 풍경들, 반 친구들 다 같이 먹었던 오므라이스. 하나둘 볼 때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에 니레이의 입가에는 어느새 웃음기가 감돌고 있었다.


 내내 사진을 넘기던 엄지는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화면에 비춘 사진에 니레이는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반장, 부반장이 결정되던 날, 모처럼 기념인데, 라며 키류가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어색한 얼굴로 잔뜩 긴장한 사쿠라와, 그의 양옆에 웃으며 서 있는 스오와 제 모습이 보였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고 일주일. 방학 중에도 돌아가면서 마을 순찰을 하기로 했지만, 아직 니레이의 차례는 오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다른 친구들과 만난 적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방학 동안 특훈은 어떻게 되려나. 순찰 당번이 되면 어차피 방학에도 얼굴을 마주한다는 생각에, 따로 스오와 특훈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방학이 시작된 후에도 단톡방에서 모두와 대화를 하긴 했지만, 스오와 따로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새삼 드는 생각에 니레이는 무의식적으로 연락처 화면을 펼쳤다. 후우린에 들어와서 알게 된 수많은 연락처 사이, 스오의 이름이 보였다.


 내일 날이 밝으면 연락해 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오 씨, 날이 더운데 잘 지내시나요? 저는 에어컨이 고장 나서 큰일이에요. 조금 있으면 같이 순찰하는 날이 오겠네요. 그러고 보니 특훈에 대해서 상의드리고 싶은데…….


 고작 일주일 동안 스오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니레이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스오의 이름 위에서 머물러있던 손가락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스오 씨는 잠들었을까.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니레이 안의 그는 제법 바른 생활 청년이었다. 아마 진작에 누워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얼른 자야 하는데. 괜히 화면 위에 떠 있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매만지게 된다.


 “아!”


 다짜고짜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발신 화면에 니레이는 다급하게 빨간색 종료 버튼을 연타했다. 그냥 화면을 만졌을 뿐인데 실수로 스오에게 착신이 걸리고 말았다. 진짜 통화 어플을 따로 설치하든지 해야지. 유용성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스피드 발신 기능에 니레이는 곤혹스럽기만 했다. 바로 끊었으니까 수신 기록이 안 남으면 좋겠는데. 혹시 자는 도중에 벨소리 때문에 깼으면 어떡하지…?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라니 민폐 아니야? 잠시 핸드폰을 쏘아보던 니레이는 그대로 베개 위로 얼굴을 묻고 말았다. 가뜩이나 오지 않던 잠이 전부 달아나 버린 기분이었다. 밀려오는 쪽팔림에 괜히 침대 위로 팔다리를 동동 굴렀다. 그렇게 허공 발차기를 하는 것도 잠시, 진동과 함께 들려오는 벨소리에 니레이는 우뚝 멈췄다. 설마 아니겠지……? 그는 조심스레 핸드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스오 하야토 ]


 화면에 커다랗게 표시된 수신자 이름에 니레이는 다시 한번 발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침대 위에 예의 바르게 무릎을 꿇고 앉은 니레이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비명을 삼키며 조심스레 수신 버튼을 슬라이드 했다.


 “……여보세요?”
 “아, 니레 군 미안해. 조금 전에 연락 못 받아서.”


 니레이의 바람과 상관없이, 단 몇 초만으로도 니레이의 수신 기록은 스오의 핸드폰에 남아버린 것이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머뭇거리는 도중, 수화기 너머에서 제법 걱정스러운 기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레 군 무슨 일 있어? 전화가 바로 끊어지길래.”
 “아, 그……. 실수로 눌렀어요…….”


 순순히 사정을 털어놓았지만 어쩐지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 한밤중에 스오의 연락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고 본인에게 실토하는 것 같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지만.


 “그래? 무슨 일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 그러면 이만 끊을게.”
 “저기……!”


 아차 싶었다. 이만 끊겠다는 스오의 말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렇지만 모처럼 듣는 스오의 목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조금 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니레이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스오의 말끝을 붙잡았다.


 “혹시 스오 씨만 괜찮다면 조금 더…… 조금만 더 통화해도 될까요?”
 “니레 군이 그러고 싶다면, 괜찮아.”
 “정말요!”


 별다른 고민의 시간도 걸리지 않고 선뜻 돌아온 대답에 니레이는 곧장 목소리가 커졌다가, 밤중이라는 게 떠올라 다시 목소리를 소곤거렸다.


 “스오 씨, 혹시 저 때문에 잠 깬 건 아니죠……?”
 “괜찮아. 아직 안 자고 있었어. 니레 군이야말로 늦은 시간인데 깨어있었네.”
 “저는 잠이 안 와서……. 아! 엊그제부터 제 방 에어컨이 고장 났거든요. 덥고 습해서 잠이 잘 안 와요……. 뭔가 오늘 밤은 유독 더운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요즘 들어서 해가 져도 덥더라. 니레 군은 더위 많이 타는 편이야?”
 “음……. 보통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스오 씨는 더위를 안 타는 것 같네요. 땀 흘리는 모습도 본 적 없고.”
 “의식한 적은 없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네.”


 스오와 대화할 때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했다. 가끔 혼자만 신나서 떠들 때도, 쉽사리 꺼내지 못하던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아마도 그가 항상 배려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덕분에 편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거의 매일 만나다가 이렇게 일주일이나 안 보니까, 조금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네. 가끔은 주말에도 특훈한다고 만났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스오 씨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을 수 있어서 기뻐요.”


 니레이는 내내 앉아 있던 자세를 풀고 베개 위로 얼굴을 묻었다. 뱉고 보니 조금 낯간지러운 말이라고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도. 이렇게 니레 군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온화하게 돌아오는 목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스오의 얼굴이 떠올라, 니레이는 괜히 선풍기 바람 세기를 강으로 올렸다. 그렇게 하면 시끄럽게 털털거리는 선풍기 소리에 뭐든 숨겨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른 에어컨 고치면 좋겠어요.”


 더위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지만.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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