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받은 숙소는 넓고 쾌적했지만, 방과 화장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건 불편한 점 중 하나였다. 문소리에 행여나 누가 잠에서 깨어날까 봐 스오는 살그머니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잠들어 어두컴컴한 방 안이었지만 창문으로 비치는 달빛의 도움으로 스오는 겨우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이부자리에 앉아 가만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 사이로 드르렁거리며 세차게 코를 고는 츠게우라. 츠게우라가 내팽개친 베개를 자기 것인 것처럼 꼭 끌어안고 자는 키류. 더웠는지 이불을 전부 옆으로 밀어낸 채 고양이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자는 사쿠라. 그 옆으로는 가지런한 자세로 눈을 감고 누워있는 니레이가 보였다. 다들 자는 모습이 개성 넘치는구나. 스오는 쿡쿡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운을 뗐다.
“잠이 안 오는구나, 니레 군.”
“……들켰어요?”
곤히 감겨있던 니레이의 눈꺼풀이 살며시 떠졌다. 바로 옆자리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스오의 모습에 니레이는 스오 쪽을 향해 몸을 돌려 누웠다.
“나도 마침 잠이 안 와서.”
스오는 가만히 손을 들어 부스스한 니레이의 머리를 넘겨주었다. 살갗을 스치는 스오의 손길은 제법 서늘해서 기분 좋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아무 대답도 없던 니레이는 문득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오 씨, 산책하러 갈래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문문이었지만, 실제로 대답을 들을 생각이 있긴 했던 건지. 스오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니레이의 손은 이미 스오의 손을 잡아끌고 있었다. 니레 군은 가끔 참 강압적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스오는 싱긋 웃음 지었다.
낮까지만 해도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해변은 새벽이라 그런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에 니레이의 발걸음 역시 가벼워졌다. 손가락에 걸쳐진 편의점 봉투에는 미처 다 들어가지 않은 폭죽 봉투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스오보다 몇 걸음 앞을 나아가던 니레이는 몸을 돌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사실 바닷가에서 한 번쯤은 불꽃놀이 해보고 싶었거든요~”
“다들 물놀이에 바비큐 파티까지 하느라 지쳐서 쓰러졌으니까.”
관광지로 유명한 해변이었지만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탓인지 주변에는 인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사박사박 들려오는 모래알 밟히는 소리와, 해안선에 부딪혀 사라지는 파도 소리만이 두 사람의 주변을 에워쌌다. 고요한 자연 소리 위를 거닐다 보니 마치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둘만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 앉을까요?”
“응, 좋네.”
한동안 모래사장을 나아가던 둘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니레이는 들고 있던 봉투 속을 뒤적이더니 차례차례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섯 개입 스파클라 폭죽에 라이터, 캔 음료 하나와 플라스틱병. 그리고 자그마한 과일 젤리 한 봉지. 신나게 꺼내는 것치고는 제법 단출한 내용물이었다.
“보리차는 스오 씨, 저는 오렌지 에이드!”
“이 새벽에 탄산음료 마셔도 괜찮아?”
“헤헤, 일종의 일탈이죠!”
기온 때문인지 캔 겉면에는 금세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푸쉭, 캔 따는 소리와 함께 니레이는 스오의 손에 들려있던 보리차에 가볍게 제 캔을 부딪쳐 보였다.
“건배, 라고 하면 이상할까요?”
헤헤, 멋쩍게 웃어 보이는 니레이의 모습에 스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전혀.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스오가 제 보리차 병을 캔에 경쾌하게 부딪쳤다.
“건배~”
산뜻한 스오의 말투에 니레이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어 괜히 음료수를 벌컥 들이켰다. 갑작스레 들어온 탄산음료에 어쩐지 목 안쪽까지 따끔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니레이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오는 느긋한 손길로 폭죽 포장을 뜯었다. 스오는 스파클라 하나를 꺼내 먼저 니레이의 손에 건네주었다.
“니레 군 조심해.”
작게 화력을 조절한 라이터로 스파클라 끝에 불을 붙이자 타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와아, 하는 감탄 소리를 들으며 스오도 폭죽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곧 두 개로 늘어난 불꽃에 니레이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제법 여름 같죠?”
파도 소리와 함께 부스스 흩어지는 니레이의 웃음을 제 기억 속으로 갈무리하며, 스오 역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노랗게 피어난 불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니레이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다 같이 노는 것도 즐거웠지만, 오늘은 스오 씨랑 별로 대화를 못 해서 조금 아쉬웠거든요.”
그야, 사귀는 사이고……. 치이익하며 튀어 오르던 불꽃은 금방 사그라들어서, 조그맣게 기어들어 가던 니레이의 목소리는 그대로 스오에게 닿았다. 달빛이 희미한 탓에 어둑한 밤하늘 아래 니레이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가지만 굳이 그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져서, 스오는 새로운 폭죽을 집어 들었다.
“나도.”
파앗 밝혀지는 불꽃에 다시금 두 사람의 시야가 환해졌다. 불꽃 너머로 붉게 달아오른 니레이의 얼굴이 보여 스오는 괜스레 웃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도 니레 군이랑 단둘이 대화할 수 있어서 기뻐.”
“으윽…….”
니레이는 후덥지근한지 음료수를 마셨다. 따끔하게 목구멍을 자극하는 탄산은 어지간히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음료수를 마셨는데도 어쩐지 갈증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탄산과 함께 입안에 애매하게 남은 오렌지의 잔향이 여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스오의 손에서 환하게 타들어 가는 폭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목 안쪽에서 톡톡 느껴지는 탄산이 마치 저 불꽃 같아서. 그런 니레이의 시선에 재촉당하듯 불꽃은 머지않아 꺼지고 말았다.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스오의 얼굴은 이미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부드럽게 입술 위로 겹치는 온기에 니레이는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스오는 작게 이를 세워 그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틈을 파고드는 이질적인 감촉에 니레이는 스오의 옷깃을 꾹 쥐었다. 니레이를 집요하게 탐하던 스오의 입술은, 숨이 막히는지 다급하게 제 옷을 팍팍 잡아당기는 니레이의 손길에 의해 떨어져 나갔다. 금세 끝난 키스가 못내 아쉬웠는지, 스오는 숨을 내쉬려던 니레이의 입술 위로 쪽 소리를 내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제야 숨을 색색 내쉬는 니레이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스오를 쏘아보았다.
“하아, 너무 길어요……!”
“음. 니레 군, 다음부터는 키스하면서 숨 쉬는 방법을 배워볼까?”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반대로 장난기가 섞인 스오의 웃음에 니레이는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스오 씨한테 그런 배움은 원하지 않았다고요!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꾸욱 삼키며 다시금 음료수를 벌컥 들이켰다. 따끔거리는 탄산과 단내나는 오렌지 향 대신 조금 전까지 입안을 훑던 온기가 떠올라, 니레이는 괜히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2024.07.01
'text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오니레] 너에게 닿기를 (0) | 2024.10.16 |
|---|---|
| [스오니레] 새로운 아침 (0) | 2024.10.16 |
| [스오니레] 장맛비 (0) | 2024.10.16 |
| [스오니레] 한밤중의 다과회 (0) | 2024.10.16 |
| [스오니레] 토끼잠 (0) | 2024.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