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오! 마침 잘 됐다!”
딸랑딸랑, 경쾌하게 울리는 벨소리와 함께 스오의 얼굴이 보이자 코토하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포토스에 발을 들이자마자 자신을 반겨오는 그의 모습에 스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어?”
“아까 장보면서 달걀 사오는 걸 깜빡했는데 가게를 비울 수가 없었거든. 저기~”
코토하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익숙한 미모사색 정수리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지 않아도 부드러워 보이는 곱슬머리의 주인은 니레이가 분명했다. 애초에 스오가 포토스로 발길을 향한 것도 그와 만나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워도 되나 고민했거든. 마침 와줘서 다행이다!”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다녀와~”
“고마워!”
벌써 앞치마를 벗고 장바구니까지 챙겨 든 코토하는 이따 커피 한 잔 서비스로 줄게, 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그대로 가게를 나섰다. 포토스는 단골이 주로 방문하는 카페였다. 어차피 이 거리에서 얼굴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고 손님이 온다고 해도 다들 코토하를 기다려줄 것이다. 수고스러운 일 하나 없이 공짜 커피를 얻게 되어 조금 민망한 기분도 들었다.
코토하가 사라지자 그는 곧바로 니레이가 앉아있는 안쪽 테이블로 향했다. 평소라면 바 테이블에 앉았을 텐데 오늘은 스오와 함께라는 이유로 미리 테이블 자리를 잡고 앉았나 보다. 스오는 구태여 맞은편 자리가 아닌 잠든 니레이의 옆에 앉았다.
스오는 가만히 턱을 괸 채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극비’라는 글씨가 무색하게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라와 있는 노트. 표지 위에 냅다 눌린 볼은 나중에 펜 자국이 묻어나는 건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침은 안 흘리고 자서 다행인가. 희미하지만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엎드린 니레이의 몸이 작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이래선 코토하가 그를 깨우기 망설여진 것도 이해가 갔다.
“니레 군~ 너무 무방비한 거 아니야?”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은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문득 눈가를 간지럽히는 앞머리가 불편해 보여 스오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부들거리는 샛노란 머리칼이 스오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며 은은한 샴푸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러고 보니 전에 키류 군이 추천해준 샴푸로 바꿨으려나. 곱슬머리로 고민하던 니레이가 떠올라 괜히 머리끝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으응…….”
그런 스오의 손길을 느꼈는지 엎드려 있던 니레이의 입에서 작은 잠꼬대가 새어 나왔다.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그는 머리카락을 지분거리던 손을 슬그머니 멈췄다. 혹시 깨어났나? 걱정도 잠시 다시 고르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스오는 후, 웃음을 흘렸다.
그는 가만히 테이블 위로 뺨을 붙였다. 평소라면 이렇게 바르지 못한 자세로 엎드릴 일은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지금은 잠든 니레이와 눈높이를 맞춰 그를 바라보고 싶었다. 스오는 다시금 찬찬히 그의 얼굴을 관찰했다. 언제나 호기심으로 빛나던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고 하얀 피부 위 오보록한 주근깨가 그를 앳돼 보이게 만들었다. 답답한지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는 얕은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가까이에서 니레이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일지도 모른다.
“니~레~군~”
불러도 반응 하나 없는 니레이의 모습에 스오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길래 이렇게 평온한 얼굴인 걸까. 어쩌면 현실보다 달콤한 꿈속에서 깨기 싫은 건 아닐까. 그 평화로운 꿈속에는 누가 있을까. 혹시라도 내가 있을까. 꼬리를 잇는 생각에 스오는 고개를 바로 들었다.
“기왕이면 현실의 나를 봐주면 좋겠는데.”
결국 입 밖으로 뱉어진 마음에 스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유치한 본심은 아직 니레이에게 전할 준비가 되지 않은 날 것이었다. 어른스러운 척 여유 부리며 삼켜봐도 이렇게 그를 바라볼 때면 드물게 고개를 들이밀곤 했다. 선뜻 입에 담기 어려운 감정을 언제쯤이면 니레이에게 건넬 수 있을까. 스오는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니레이의 머리카락을 부스스 쓸어 넘겼다.
“얼른 일어나, 니레 군.”
그 두 눈이 오롯이 나만을 비출 때가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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